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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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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버스토리] 느림보나무 “간직하고 싶은 이야기, 나무새김으로 소통합니다”
2022-05-02

우리는 너무도 빠른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클릭 한 번이면 원하는 정보도, 물건도 얻을 수 있고, 로딩 시간이 조금만 느려져도 참기 어려운 답답함을 느낍니다. 택배 배송기간도 점점 빨라지더니 이제는 총알배송, 당일배송이란 말도 등장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빠르지 않으면 안 되는, 속도에 유독 예민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시대에 마치 반기를 든 것 같은 위버, ‘느림보나무’가 있습니다. 리버마켓이 추구하는 가치와도 잘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그래서 리버레터의 위버스토리의 첫 번째 주인공은 느림보나무로 정했습니다. 다른 이들의 마음을 나무에 새겨주는 느림보나무의 이야기를 이번 리버레터에 새겨 드리려고 합니다. 잠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마음의 여유를 찾아보면 어떨까요?

Q. 나무새김, 이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A. 어느 날, 나무 한 조각을 주웠는데, 문득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오르면서 ‘할머니는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시간이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 나무 조각에 할머니 이름을 새겨 보았죠. 애착이 생겨서 그 조각을 늘 가지고 다녔는데, 이걸 본 지인들이 만들어 달라고 요청을 하더라고요. 공식적인 첫 번째 주문은 제가 돌아가신 할머니를 추억했던 것처럼, 사고로 떠난 동생의 이름을 기억하고 싶다는 손님이었어요. 이를 계기로 나무에 새기는 것은 마음에 새기는 것과 같다고 정의를 내렸어요. 누구에게나 간직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렇게 나무새김을 시작했어요.

Q. ‘나무느림보’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로 지으셨나요?
A. 하나의 글귀를 나무조각에 새기는 일은 예리한 칼이나 톱에 힘을 주는 일이라 위험해요. 그래서 급하지 않게, 느리게, 조심스럽게 해야 하거든요. 그만큼 마음도, 정성도 더 많이 들어가게 되더라고요. 그때 알았죠. 느림보는 게으른 게 아니라 섬세하고, 더 많이 정성을 쏟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것을요. 그래서 저는 느림보나무입니다.


Q. 작업하다가 다친 적은 없으신가요?
A. 많이 다쳤죠. 신기한 건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그런지, 다쳐도 많이 아프지는 않아요. 오히려 온전히 집중하지 못해서 다친 것 같아 반성하게 되죠. 지금은 20년 경력도 쌓였고, 다치는 일은 줄었는데요. 그만큼 정성을 쏟는 만큼 작품 퀄리티가 달라지다 보니, 제작 기간이 짧지는 않답니다.

Q. 작품을 만들 때 어떤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나요?
A. 2002년 월드컵 이후 거리 문화가 활발해졌거든요. 그때는 제가 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인데, 저도 젊음의 메카 홍대 거리에 제 작품을 들고 나갔죠. 다행히 시민들이 좋게 봐주셨어요. 거기에서 다양한 분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디어도 많이 얻었는데, 저마다 사연들이 다 있더라고요. 그래서 작품을 의뢰받을 때 고객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요. 그들의 사연에 공감해야 더 의미 있고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거든요.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나무새김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잇는 어떤 매개체라고 할 수 있겠네요.
A. 그럼요. 예전에 귀했던 나무 연필도 지금은 대량 생산되잖아요. 그런데 아이 손을 잡고 제가 만든 나무 연필을 구매하시는 부모님들은 연필을 칼로 깎던 시절, 친구들끼리 몽당연필에 볼펜을 끼워 쓰던 시절을 추억하세요. 그리고 아이들은 부모가 쓰던 나무 연필의 감촉을 느끼면서 그때 그 아날로그 기분을 경험하죠.


Q. 나무새김 작업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어떤 점이 가장 좋으신가요?
A. 이 일은 칼과 나무 조각만 있으면 몰입할 수 있어 좋아요. 나무라는 자연의 재료로 일상의 한 자리를 채울 수 있다는 게 기쁘고요. 고객이 구매한 제품을 찍은 사진이나, 작품을 잘 가지고 있다고 가져와서 보여주시면, 더 크게 자부심을 느껴요. 이 과정들이 마치 고객들에게 타임캡슐을 선물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답니다.

Q. 앞으로 위버로서 어떤 계획이 있으신가요?
A. 나무새김으로 고객과 소통하는 위버가 되고자 해요. 코로나19로 많은 공예가분들이 일을 그만두셨어요. 착잡하고 서글프지만, 공예품의 가치는 변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요. 이를 알아봐 주시는 고객들을 위해 제 악력이 다할 때까지 이 일을 할 생각이에요. 함께 살아가는 의미를 가르쳐 주는 리버마켓의 가치도 잊지 않을 거고요.


잠깐 느림보나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가 왜 느림보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의 나무새김은 빠르지 않으면 불안함과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조금 느려도 괜찮다고, 그래야 더 소중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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